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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1, Apr 2024

형태가 살아날 때

U.K.
When Forms Come Alive Sixty Years of Restless Sculpture

2024.2.7-5.6 헤이워드 갤러리, 런던

● 변하연 영국통신원 ● 이미지 Hayward Gallery 제공

Installation view of Eva Fàbregas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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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연 영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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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오늘의 영국 미술을 이토록 색다르게 만들었나! 20세기 말까지 시각 예술계의 변방에 불과했던 영국. 그런데 반세기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영국의 예술가들은 세계 미술 시장의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공공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거리 미술의 신화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세계의 미술관, 갤러리와 뮤지엄, 도시의 거리는 온통 영국 예술가들의 작품과 이름으로 뒤덮였다. 도대체 이 길지 않은 세월 동안 영국 미술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책 『창조의 제국』(임근혜, 2009)이 직시하듯 ‘현대미술의 심장’이라 불리는 런던, 그 가운데 템즈강과 사우스뱅크 주변의 문화예술을 책임지는 헤이워드 갤러리(Hayward Gallery)는 런던 현대미술의 저력을 증명하는 2024년 첫 전시로 조각을 선택했다.



Installation view of Olaf Brzeski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조각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사물을 넘어, 아이디어와 형태, 공간, 관계성이 3차원으로 구현되는 현장의 증거이자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변화무쌍한 영역이라 해석할 수 있다. 만지고, 느끼고, 때에 따라 체험할 수도 있는 조각은, 요즈음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 고유한 특성이 더욱 부각된다. 기술은 예측불허의 수준으로 발전하고, 인공지능의 우수함에 대한 감탄과 논의가 반복되고, 물리적 공간에서만 실현 가능하던 물질들도 디지털로 편입되며 화면 너머의 것들을 감상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실재와 디지털이 혼재된 일상을 살아간다. 그림을 그려주는 인공지능 웹사이트들을 어렵지 않게 이용할 수 있고, 예술계에서는 인공지능의 개입을 어떤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이 연일 이어진다.



Installation view of Tara Donovan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그러나 창작의 원료가 되는 아이디어를 비롯한 비물질적인 측면과 더불어 인간에 의해 창작되는 작업이 가지는 유일무이한 특성이 몇 가지 있다. 3차원의 상징인 조각은 기술로는 완성할 수 없는 고유의 특성을 가진 영역으로, 물질성이 극대화되는 순간 단순히 실재적인 형태를 가진 사물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조각의 형태가 살아날 때, 조각은 사람들로 하여금 물리적이고 직관적인 경험을 제공하여 주체성과 능동성을 부여하고, 작업과 관람객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이에 따라 형성되는 관계성은 작업과 관람객 사이를 순환한다. 물리적 행위자와 물리적 조각이 만날 때, 물질적 특성이 극대화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은 사물의 본질에 가까워지는 행위다.



Installation view of Michel Blazy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일상이나 관계가 점점 디지털화되는 현상에 주목한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는, 이러한 시대와 대조되는 실재적인 경험에 대해 고찰하고, 관람객들로 하여금 물리적 경험을 촉발하는 대규모 조각 전시 <When Forms Come Alive>를 개최한다. 타라 도노반(Tara Donovan), 홀리 헨드리(Holly Hendry), 에바 파브레가스(Eva Fàbregas),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등 총 21명의 조각가들이 참여한 이 대규모 전시는 헤이워드 갤러리의 드넓은 전시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예측불허하고, 역동적이며, 관람객과 함께 공명하며 형태가 살아난다. 압도적인 조각 작품들의 향연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업 몇 가지를 함께 살펴보자.



Installation view of Holly Hendry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파브레가스는 거대한 공기 주입 풍선들이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운 작업 <Pumping>(2019)을 선보인다.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워 압도감을 자아내는 이 거대한 군집을 관람하기 위해 관람객들은 작업의 틈새를 비집고 가장자리를 돌며 작품에 접근한다. <Pumping>은 미세하게 맥동하는데 이는 마치 자가 호흡이 가능한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이기도 하고, 장기나 내장처럼 보이기도 하여 누군가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생경한 감각을 일깨우기도 한다. 여러 개의 서브우퍼를 통해 흘러나오는 낮은 주파수는 관람객들이 단순히 주파수를 듣는 것을 넘어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는 작가의 의도처럼, 아음속(음속보다 느린 속도) 주파수, 리듬 및 사운드에 의해 활성화되는 악기 그 자체로도 변모하는데, 관람객이 작업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작업 그 자체에 스며들어 형태를 함께 형성하며 소통하고 있다는 감상을 유발한다.



Installation view of Lynda Benglis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급진적인 움직임과 본능적이고 반사적인 고조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EJ 힐(EJ Hill)의 거대한 롤러코스터 조각 작품 <A Subsequent Offering>(2017)은 블랙 조이(Black Joy)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놀이공원에서 배제되었던 역사적 사실을 연결한다. 힐은 롤러코스터를 ‘사회적 형평성의 중요한 구성 요소’인 기쁨과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공 기념물로 묘사했고, 갤러리에 전시된 <A Subsequent Offering>은 탑승할 수는 없지만, 세밀하고 섬세하게 구현된 롤러코스터를 보면서 이를 탑승할 때의 아찔함이나 속도 같은 것을 자연스레 연상케 만든다. 이러한 감정들에 대한 공개적인 묘사는 ‘모든 신체에 동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안전감’을 전제로 하며, 관람객들로 하여금 집단적 경험의 본질에 대해 사유할 기회를 제공한다.



Installation view of Marguerite Humeau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헨드리는 전시장의 뻥 뚫린 창문을 가득 채우고 벽면까지 늘어진 원통형의 금속 파이프가 갤러리 외부까지 이어진 신작 <Sottobosco>를 공개한다. 극소하고 미세한 것들(이끼, 물, 조류, 균류의 현미경 이미지)과 성장하고 주변을 장악하는 것들에 대해 사유하고 이를 조각적인 관점으로 접근하는 작가는 작업을 통해 공간 자체를 더 큰 생태계의 일부로 변모시킨다. 이끼류를 표현하기 위해 초록빛으로 채색된 금속 덕트가 창문의 내외부를 넘나드는데, 이는 공간의 분단을 뛰어넘어 유기성과 연결성을 보여주며 앵글에 따라 창문을 통해 역으로 외부에서 침입하는 듯 보이기도 하여 관람객들의 감상이 각도나 시점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둔다. 콘크리트 캔버스와 강철 도관을 비롯한 산업용 자재들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미생물이 성장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작가는 자연환경과 건축 사이의 예측불허한 연관성을 만들고, <Sottobosco>를 통해 건물을 더 큰 생태계의 일부로 바라볼 수 있도록 새로운 관점으로의 접근을 유도한다.



Installation view of Studio DRIFT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웨스트의 <Epiphanie an Stuhlen(Epiphany on Chairs)>(2011)와 <Kain naht Abel (Cain approaching Abel)>(2009)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Epiphanie an Stuhlen>의 거대한 구 형태의 조각품은 인공위성 같이 보이기도,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생물처럼 보이기도, 사나운 폭발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공전하는 행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모호한 형태의 작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열어둔 채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하며, 조성된 두 개의 의자는 관람객 역시 작업의 일부임을 강조한다. <Kain naht Abel>은 비교적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데, 두 개의 조형물이 실제로 마주보고 있는 배치는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싸우거나 혹은 넘어질 것처럼 보이나 관점에 따라 적대적으로 해석할 수도, 함께 균형을 유지하며 중심을 잡고 있는 것처럼 볼 수도 있다. 작업의 제목은 카인과 아벨을 나타내지만, 웨스트의 작업에서 사람의 형태로 의인화되지 않고, 마찬가지로 정의할 수 없는 집합체 그 자체다.



Installation view of Matthew Ronay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도노반은 앵글과 시점에 따라 곡선 사이로 드러나는 틈새와 물 흐르듯 유기적으로 끝없이 연결된 구 형태의 조각 작업 <Untitled(Mylar)>(2011)로 관람객을 포용한다. 그가 작업의 추가 재료로 생각하고 자신의 작업에서 언제나 중요하게 여기는 빛은 관람객들이 작업 주위를 이동하며 감상할 때마다 형태를 달리하며 변화무쌍한 잔상이 되어 공존한다. 높은 반사성을 가진 폴리에스테르 필름인 마일러(Mylar) 수천 개가 다양한 크기의 구체로 압착돼 거대한 응집체 <Untitled>를 형성하는데, 가까이에서 볼수록 그 세밀함이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이 작업 역시 관점에 따라 조각의 정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마치 외계행성처럼 보이기도, 미생물처럼 보이기도, 생물 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노반은 2015년 덴마크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과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작업을 ‘무제(Untitled)’로 작명하는 이유에 대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연상하고, 각자의 삶의 경험에 따라 작업을 느끼길 바란다고 설명했다. 관람객들이 정의되지 않은 제목에 대해 그 자체만으로 궁금증을 품게 되는 것처럼, 작가의 의도대로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작업을 해석하고, 느끼고, 온전히 받아들이는 생생한 경험을 체득하게 되는 헤이워드 갤러리의 이번 전시 <When Forms Come Alive>를 감상할 때는, 특히 더 과감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다양한 각도와 거리에서 적극적으로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헤이워드 갤러리의 디렉터 랄프 루고프(Ralph Rugoff)가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관람객을 매혹적인 ‘형태’의 세계로 안내하며, 신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피하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이 설득력 있는 신체성과 유형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듯, 전시장을 가득 채운 수많은 조각의 향연 속에서 물질성을 향유하며, 실재하는 감각을 일깨우고, 물리적인 공간 속 작업의 경계 안에서 관람객은 스스로 움직이고 사고하는 행위자 그 자체로 존재하는 매력적인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PA



Installation view of Teresa Solar Abboud 
<When Forms Come Alive>
 7 February - 6 May 2024 Courtesy
 the Hayward Gallery Photo: Jo Underhill



글쓴이 변하연은 현재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Goldsmiths, University of London)에서 순수예술을 공부하며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다양한 개인전 및 그룹전을 선보였다. 최근 전시로 런던 Staffordshire St의 그룹전 <Baggage Claim>(2023)에 참여했다. 향후에도 영국에 거주하며 학업 및 예술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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