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Art World
Issue 212, May 2024

멀리서 포착한 현재

Japan
Universal / Remote

3.6-6.3 국립신미술관, 도쿄

● 권상해 일본통신원 ● 이미지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제공

Evan Roth 'Since You Were Born' 2023 Installation view of 'Universal / Remote'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4 Photo: Keizo Kioku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권상해 일본통신원

Tags

팬데믹과의 긴 동행 끝에 우리는 다시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물론 이전과는 알게 모르게 달라진 모습의 일상을 말이다. 그동안 변화한 것들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 새삼 상기하는 작업은 앞으로의 미래상을 가늠하기 위한 중요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일본 도쿄 국립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Universal / Remote>는 2010년대 이후 스마트 디바이스의 보급과 초국가적 경제 시스템에 기반한 사회 구조의 다양한 측면을 영상, 사진, 설치, 회화 등의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조명한다. 전시는 ‘전 세계’와 ‘원격’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교차 지점으로 삼아 코로나 시기 전후에 제작된 8명과 1팀의 아티스트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지난 3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한다.

코로나 팬데믹 종식 이후, 우리는 지금까지와 다름없는 익숙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동안 긴장을 뗄 수 없었던 전염병의 공포는 희미해졌지만 그때의 습관과 경험은 온전히 남아 있다. 돌이켜 보면 불과 1-2년 전만 해도 일상생활에서 마스크와 손소독제는 필수였으며, 비대면 화상 회의를 기본적인 소통 수단으로 삼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전 세계 사람들이 마치 매일 똑같은 의식을 수행하는 듯한 일상이 펼쳐졌다. 이동과 접촉의 제한은 우리에게 대면적 관계가 옅어진 개별적 경험 그리고 계층 간의 격차를 가져오기도 했다. 지금 마주하고 있는 일상 속에는 코로나 시기를 통과하며 사회 전반에 스며들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풍경을 만들어 낸 요인들이 은연중에 흩어져 있다.



Installation view of Hito Steyerl, Neuer Berliner Kunstverein
 (n.b.k.): Hito Steyerl <MISSION ACCOMPLISHED: BELANCIEGE> 
2019 video installation, environment written and co-produced by 
Giorgi Gago Gagoshidze, Hito Steyerl, and Miloš Trakilović
Courtesy the artists; Neuer Berliner Kunstverein, Berlin; 
Andrew Kreps Gallery, New York; Esther Schipper, Berlin  
Photo: Neuer Berliner Kunstverein (n.b.k.) / Jens Ziehe



국립신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 <Universal / Remote>는 2010년대 이후 자본과 정보가 세계 규모로 이동하는 상황 속에서, 가쁘게 지나온 코로나 시대를 돌아보고 우리의 변화된 일상을 재조명한다. 전시 제목의 ‘Universal’은 ‘전 세계’ 규모의 끊임없는 확장을, ‘Remote’는 ‘원격’화 하는 개인을 뜻하는데, 두 상황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접점을 가진다.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은 이들 주제를 스쳐 지나가며 우리가 코로나를 계기로 경험하게 된 사회 구조와의 조우, 그 과정에서 발현된 감각들을 활성화한다. 전시는 사회를 이루는 보이지 않는 구조를 들추어내고 개개인이 실감하는 사회와의 거리 감각을 구체화하는 작업들을 선보인다.

전시장의 첫 번째 방에서 만나게 되는 이다 다이스케(Daisuke Ida)의 작품은 사회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는 규범이나 관습을 조각적 구조를 통해 드러낸다. 2021년에 제작된 세 가지 영상 작업은 열이나 불에 의해 각각 비행, 상승, 낙하하는 물체를 포착한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종이비행기가 휴대용 버너의 상승 기류를 받아 넘실넘실 떠다니는 모습을, <이카로스>는 상승하는 열기구가 바람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을, <Fever>는 브론즈 조각이 밝게 빛을 낼 때까지 가스 토치로 계속해서 달구는 모습을 담고 있다. 언뜻 보기에 정적이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한편에 위태로운 기분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다가 이들 작품에서 다루는 주제는 비트코인 등의 가상화폐라는 자본주의 내부의 양가적 존재(탈중앙적 통화/투자의 대상)에 투영된 인간의 과열된 욕망과 행동이다.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불과 열은 인간이 성공이나 풍요, 희망을 갈망하는 태도를 은유함과 동시에 그 욕망에 내재한 불확실함과 불안이라는 이면의 감정을 대변한다. 영상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특정한 결말에 도달하지 않고 계속해서 아슬아슬한 상태를 반복함으로써 현대사회에 편재하는 욕망의 양면성을 시사한다.



Daisuke Ida <For Whom the Bell Tolls?> 
2021 Video (loop) Courtesy of the artist 
© Daisuke Ida



쉬빙(Xu Bing)의 약 80분가량의 2017년 작 영화 <잠자리의 눈>은 중국 인터넷상에 공개된 감시 카메라 영상을 대량으로 수집하여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은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특정한 배우나 촬영 스태프는 존재하지 않고, 각 장면은 감시 카메라 영상들을 편집한 것이다. 주인공 남녀의 목소리는 더빙으로 이루어졌으며 화면마다 등장하는 남녀는 실제 익명의 일반인의 모습으로 계속해서 바뀐다. CCTV, 교통 카메라, 경비 카메라, 웹캠이 비추는 장면에는 때로 폭력과 사고, 재난 등의 충격적인 사건들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감시 카메라의 기계적인 작동은 누군가의 삶을 있는 그대로 비춰내고 있지만 오히려 현실과는 동떨어진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가 “세상은 마치 스펙터클한 영화 촬영소와도 같다”라고 말하듯이 우리는 언제든 영화 속 인물로 꾸며질 수 있는 제반 조건 속에 살아가고 있다. 작품의 제목은 3만여 개의 낱눈을 가진 잠자리의 눈을 모티브로 하고 있으며 이는 곧 우리 주위를 끊임없이 감시하는 무수한 카메라를 상징한다. 쉬빙은 이를 통해 감시 사회를 고발하기보다는 한 개인이 감시 카메라 영상을 편집하여 날조할 수 있는 현실 상황을 부각하고자 한다.

트레버 페글렌(Trevor Paglen)의 사진 작품 <상륙지점>과 ‘해저 케이블’ 시리즈는 대륙과 국경 너머로 연결된 정보통신망의 인프라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작품은 전 CIA 요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2013년에 폭로한 미국 국가안보국(NSA) 도청이라는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사진에 담긴 것은 실제로 도청이 이루어졌다고 하는 해저 케이블의 상륙지점과 케이블을 수중에서 촬영한 화면들이다.



Xu Bing <Dragonfly Eyes> 2017 
Installation view of <Universal / Remote>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4 
Photo: Keizo Kioku



바다 밑에 평행으로 길게 깔린 해저 케이블과 상륙지점에서 바라본 바다 위의 수평선은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컴퓨터에 연결된 인터넷의 물리적 존재감을 직감하게 한다. 더불어 각 작품의 제목에 쓰인 케이블의 위치와 도청한 기관의 명칭은 세계 규모의 정보 유출이 이루어진 장소와 사건에 구체성을 부여하여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감시 체제를 들추어낸다.

지누시 마이코(Maiko Jinushi)의 영상 작품 <머나먼 듀엣>은 전 세계 규모에 육박하는 앞선 작품들과 달리 사적인 여정을 기반으로 구성되었다. 작품은 지누시가 마음속 연인이라 칭하는 시인이자 소설가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ño)의 행적을 찾기 위해 2015년에 스페인을 방문한 당시에 촬영한 영상이다. 총 5부로 구성된 작품은 현지에서 촬영한 영상과 인터뷰, 볼라뇨의 소설을 낭독하는 음성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누시는 동명이인의 볼라뇨를 언급하는 현지인, 마드리드의 모형을 수리하는 인물과 만나지만 여전히 볼라뇨의 존재는 신기루 같다.

영상의 후반부에는 볼라뇨의 소설의 일부가 낭독된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에서 ‘악마의 입’이라 불리는 구멍에 아이가 빠졌는데 사람들은 그 속에 있는 악마가 두려워 구하러 가는 것을 포기한다는 이야기이다. 작가는 낭독을 맡은 현지 여성에게 구멍에 관한 의견을 묻지만 영어로 진행되는 대화는 계속해서 어긋난다. 마지막 독백에서 작가는 일본인은 구멍을 잊을 것이라 말하며 매장 문화에 관한 생각의 차이를 언급한다. 작품은 지누시 본인의 목소리와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의 텍스트를 교차시키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먼 거리의 시점으로 조우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Natsuko Kiura <Park> 2021
 Oil on canvas 97×145.5cm Courtesy of the artist 
© Natsuko Kiura Photo: EUREKA



조르지 가고 가고시츠(Giorgi Gago Gagoshidze),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 밀로스 트라킬로비치(Miloš Trakilović)가 2019년에 공동 제작한 렉처 퍼포먼스를 설치작품으로 재구성한 <미션 완료 : 벨란시지>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 발렌시아가의 유통 방식과 모방의 문제를 다루며 패션과 사회정치적 맥락을 결부시킨다. 작품은 발렌시아가의 테마 색상을 모방한 푸른 무대와 3명의 작가가 등장하는 3채널 모니터를 포함한 영상 설치로 이루어진다. 영상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발렌시아가의 역사를 추적하며 브랜드 이미지의 유통이 정치가나 유명인, 다국적 자본주의, 디지털 사회와 깊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짚어낸다.

부패한 정치인이 재기하는 과정, 트럼프가 소셜 미디어 정보를 이용한 전략, ‘밈’을 통해 홍보 전략을 펼치는 브랜드 등 정보의 격차가 만들어 내는 ‘사유화’와 ‘무기화’를 파헤친다. 이는 비단 현실과 동떨어진 영역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로 인해 급격하게 가속화된 디지털 사회에서 정보의 불균등한 배분이 가져온 불합리한 현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슈타이얼은 발렌시아가의 일명 짝퉁 제품 ‘벨란시지’(발렌시아가의 모음 스펠링을 바꾼 명칭)를 언급하며 자본주의의 구조와 격차의 전복 가능성을 재치 있게 시사한다.



Trevor Paglen <Undersea Cables Series>
 Installation view of <Universal / Remote>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2024 
Photo: Keizo Kioku



이와 같이 전시가 조명하는 작품들은 ‘전 세계’ 규모로 전개되는 정보나 자원의 이동, ‘원격’의 상황 속에서 개인과 사회 간의 거리 감각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게 한다. 디지털 사회가 가능케 한 ‘전 세계’ 규모의 사회 구조가 우리의 개별적 삶과 활동 속에 멀거나 가까운 의미망을 형성하는 역설적인 현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의 구성에 있어 흥미로웠던 부분은 ‘코로나에 관한’ 내용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체득한 감각을 통해 기존의 사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한 점이다. 빠르고 방대한 정보의 흐름에 의해 망각이 익숙해진 일상 속에서, 각각의 주제와 상황을 비평적으로 나타내는 현대미술 작품은 현재를 멀리서 포착하는 방식으로 일상과 다시 마주하게 하는 적절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PA


글쓴이 권상해는 도쿄예술대학에서 예술학 전공으로 석사학위, 아트프로듀스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대미술사 연구와 더불어 미술과 공연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큐레토리얼 실천에 주력하고 있다. 도쿄에서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현재 도쿄도 현대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 중이다.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