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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3, Aug 2023

언메이크랩_인기생물

2023.7.5 - 2023.7.23 통의동 보안여관 아트스페이스 보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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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윤민화 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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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SF 같은
이질적으로 확장된 데이터셋의 생태계


언메이크랩은 수년간 전시, 교육, 워크숍, 연구 활동 등을 통해 예술가이자 연구자, 교육자 혹은 활동가로서 전방위적인 포지셔닝을 수행하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언메이크랩의 이러한 다중적인 활동들에 참여하거나 자료들을 좇으며 언메이크랩으로부터 일종의 (기술과학적) 리터러시(literacy) 훈련을 받는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언메이크랩이 그저 최신 기술을 예술 작업의 도구적 매체로 활용하거나, 기술적 산물을 미적 대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기술과학적 지식이 생산되고 블랙박싱되어 유통되는 세부 과정 내부로 침투하려는 전사의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인데,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식으로 다시 말하면) 야누스의 두 얼굴을 동시에 바라보려는 그들의 근본적인 태도에서 기인한 것일 테다.

나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기술과학이란, 천재로 호명되는 일련의 백인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진 선형적인 발전주의 역사 속에서 기입된 것이기 때문에 그 선형성을 역으로 추적해 들어가며 해체해 단단히 굳어진 매듭의 다른 모양을 상상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난잡하고 악취가 나는 이 현실과는 동떨어진 진공의 상태에서 잉태됐을 것만 같은 일견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술과학을 의심하는 일은 신성 모독만큼이나 터부시되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술과학의 진보적이고 선형적인 발전주의 서사의 내부에서부터 그것을 교란시켜 도려낸 생경한 시각적 이미지들을 통해 고도의 유머를 구사하는 언메이크랩에게, 예술가-연구자-교육자라는 다중적 실천은 그들의 예술적 실천을 대면하게 될 관람객 혹은 대중을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과 같은 방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지켜본 바에 의하면, 언메이크랩은 대놓고 깔깔 웃기는 곤란하지만 피식하게 되는 장면들을 연출해내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전작에서는 스스로 얼룩말 패턴의 천을 두르고 인공지능의 렌즈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거나, 관람객들 앞에서 돌 위에 케첩을 뿌린 다음 그것을 핫도그로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실연하며 데이터셋의 자조적인 상관성을 드러낸 바 있다. 이러한 전작들은 인공지능의 인식 작용뿐 아니라, 그것의 오류를 지켜보는 관람객들의 인식 작용까지도 동시에 유비시키게 되는 메타적 무대가 되어 왔다. 이러한 일종의 무대 장치는 인공지능이 가져올 장밋빛 미래에 대한 무책임한 낙관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인간 문명이 파괴될 것이라는 디스토피아적 전망 사이에 공회전하는 작금의 인공지능 논의를 넘어, 구체적이고 상황적인 위치에서부터 인공지능에 관해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제공한다.     

이번 전시 <인기생물>은 전작들에서 보여준 인공지능의 객체 인식 작용의 메커니즘을 전유하는 유머에서 나아가, 인류세와 생물 다양성, 야생동물 서식지를 둘러싼 환경적 재난의 현장이라는 이슈를 엮었다. 이를테면, 언메이크랩이 다년간 조사해 온 4대강 사업으로 인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거대한 모래산(모래둑골)은 그 자체로 인류세적 경관이며,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이 10여 년 동안 아카이브해 온 트레일캠에 포착된 야생동물 사진들과 동시에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은 빈 화면은 지금 우리가 처한 생물 다양성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진 자료들이다. 나아가 트레일캠에 포착된 야생동물들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데 실패하는 기존의 객체 인식 모델 그리고 언메이크랩이 임의로 학습시킨 야생동물의 사진들로부터 생성되는 기묘한 이미지까지 기술과학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자연문화의 이미지들이 이번 전시를 구성하고 있다.

특히 언메이크랩이 이번 전시에 소환한 트레일캠의 시선은 인간적인 관점과 인간적으로 고안된 인공지능의 관점 모두를 웃도는 시공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분명 그곳에 있었기에 포착된 산양이었지만 기계가 인식하기에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포착되었기 때문에 표준적 포즈에만 길들여진 기계학습에서는 미끄러진다거나, 트레일캠에 아무것도 포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곳에 산양이 서식하지 않는다는 부재함의 서사를 기입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거나, 트레일캠의 데이터셋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가축들의 모습이 혼합된 새로운 생물체가 이미지 생성 모델을 활용하였을 때 출현하게 된다든가 하는 일들에서 그렇다. 그래서 언메이크랩이 호명하는 ‘비미래’는 트레일캠과 인공지능의 관점이 마찰하며 빚어내는 새로운 생태 이야기의 시제로 마땅해 보인다.

인류세는 인간이 지구에 끼쳐온 영향만큼이나 인간이 앞으로 발휘할 해결적 전망을 내포한 인간 중심적 개념이다. 나는 인류세라는 단어에 담긴 인간의 오만함을 떠올릴 때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인간 특유의 시간성으로 결코 환원되지 않는 지구 행성의 복합적이고 공구성적인 생태적 시간성을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언메이크랩의 전시 <인기생물>은 한편의 SF처럼, 어떤 데이터셋이 특정한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이질적으로 확장된 시공의 생태계를 일시적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터무니없는 인류세와 인공지능의 시대에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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