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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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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5.12 - 2023.9.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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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회 vs 게임사회


1. 여러 차례 방문해본 인상으로 <게임사회>는 그다지 친절한 전시가 아니다. 작품의 수가 적지 않은 데다가 각 작품을 온전히 체험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시간 동안 참여해야 한다. 또 게임의 연대기나 장르에 따른 분류를 채택하지 않기 때문에, 전시 구성이 다소 뒤죽박죽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SNS에서도 전시를 이해하거나 따라가기 힘들었다는 등의 불만이 조금 보인다) 그리고 흔히 볼 수 있는 게임의 외형을 띤 작품의 비중이 높지 않은 것도 이러한 인상에 기여한다. 실제로 <게임사회>에서 전시하고 있는 작품 중 카트라이더, 이와타니 토루(Toru Iwatani)의 팩맨, 밸브(Valve)의 포털 등 기성 대중 게임이나 PACK의 쫓아온다! 등 새로 만들어진 간단한 게임을 제외하면, 우리가 흔히 ‘게임’이라고 부를 만한 작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니까 <게임사회>는 게임이라는 장르를 ‘총망라’하거나 게임의 역사를 보여주려는 전시가 아니다. 그런 목표를 예상하고 방문한다면 전시는 당신을 상당히 실망시킬 수 있다. <게임사회>의 목표는 ‘게임의 본질’이나 ‘게임의 예술성’의 탐구와 거리가 멀다. “게임의 문법과 미학이 동시대 예술과 시각 문화,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보기 위해 기획된 전시”(웹사이트)라는 설명에 따르자면 <게임사회>는 장르로서의 게임보다는 게임이 사용하는 문법과 미학 혹은 ‘게임적인 것(the game-like)’이 어떻게 인간과 사회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려는 전시다.

그렇다면 <게임사회>에서 전제하고 있는 게임적인 것은 무엇일까? 이것을 직접 답하는 대신, 먼저 전시 소개의 한 문장을 다시 보자. “<게임사회>는 팬데믹으로 앞당겨진 사회와 게임의 강력한 동기화 과정에 주목한다.”(웹사이트) 이 문장을 근거로 나는 전시가 게임과 사회의 접점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게임사회>에서는 게임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적극적으로 등치되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까 <게임사회>에서 사회는 다분히 게임적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회는 게임화(gamified)되었다. 이 점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그리고 개별 작품들이 이 점을 어떤 식으로 정당화하든, 이것은 이미 이 전시의 전제하는 바인 것으로 보인다.



람한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 하는 방법>
 2023 VR앱 25분 © 람한 국립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2. 잠시 말을 돌리자면, C. 티 응우옌(C. Thi Nguyen)은 게임화, 특히 ‘우발적 게임화(accidental gamifi-cation)’라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는 다른 이유에서 현실에 게임 같은 특성을 도입했지만 어쩌다 보니 게임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게 되는 사태를 말한다.”*  게임적인 동기 구조의 핵심은 가치 명료성에 있다. 그러니까 게임의 목표에 비추어서 게임 내 결과물을 명료하게 평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게임의 결과를 수치화할 수 있고 그 수치를 기반으로 순위를 매길 수 있다. 이 정렬 가능성(rankability) - 혹은 그럴 수 있다는 착각 - 이 바로 게임이 게임을 넘어 인간과 사회에 미칠 수 있는 가장 뚜렷한 영향이다. 아무런 점수체계나 순위가 없는 사안에 대하여 점수를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관습이 생겨나는 것이다.

게임화라는 말을 사용했으니 이렇게 설명을 하기는 했지만 <게임사회>는 이렇게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게임화, 가치 명료성, 정렬 가능성의 개념에는 사실 큰 관심이 없다. 이것은 비단 이 전시에서 멀티플레이 게임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만은 아니다. (멀티플레이의 요소가 없으면 순위를 매길 수도 없다) <게임사회>에서 구현하는 사회상은 개인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순위싸움으로 점철된 그것이 아니다. 나아가 이 전시는 사회가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게임사회>는 개인들로 만들어진 집단을 형상화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이번 전시의 관점이 드러난다.

그러면 <게임사회>에서 말하는 사회란 무엇인가? ‘게임사회’는 어떤 의미에서 게임 ‘사회’인 것일까? ‘게임들의 모임’을 의미하고자 한 것은 아닐 테고, 대체 여기서 ‘사회’라는 말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크고 난망한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협의체로서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다. 개인들이 모종의 필요에 따라서, 예컨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회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은 사회에 선행한다. 사회는 개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건 인간의 긴 역사를 생각해 보았을 때 조금 당연하기까지 하다. 한편 반대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개인보다 사회가 선행한다고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이 사회를 살고 있는 어느 누구도 사회보다 먼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것도 마찬가지로 현실적인 상상이다. 사회는, 비유하자면, 한 명 한 명의 개인보다 오래 되었다. 사회는 개인들보다 먼저 있었고, 개인들보다 크며, 개인들보다 오래 존재할 것이다.



로렌스 렉(Lawrence Lek) 
<노텔 (서울 에디션)> 2023 멀티미디어 
설치 작가 및 Sadie Coles HQ 런던 소장



그리고 나는 <게임사회>의 많은 작품들이 그려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이 후자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개인 없는 총체로서 사회를 형상화하고자 한다. 그러한 사회 아래서 개인은 사회의 존재를 충격과 혼란 속에 경험한다. 내가 만들어낸 적 없는 어떤 총체가 이미 나보다 먼저, 크게, 높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행위는 사회의 벽과 충돌하고, 개인의 욕망은 사회에 의해 제어 받는다. 그렇다면 왜 하필 게임사회인가?

앞서 말한 ‘개인 없는 총체’로서의 사회는 어떻게 게임에 빗대어질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주 단순한데, 게임의 규칙과 환경은 플레이어보다 앞서 존재하며, 더 높은 자리에서 플레이어를 규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게임은 플레이어와는 무관하게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의 거대함을 언제나 전제할 수밖에 없다. 게임사회 혹은 게임적 사회란 이러한 사회관을 가리킨다고 나는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몇몇 작가들은 전시의 기획이 전제하고 있는 바를 시청각적으로 잘 표현한다. 가령 람한의 신작 <튜토리얼: 내 쌍둥이를 언인스톨하는 방법>은 내가 앞두고 있는 세상이 하나인지 둘인지를 모르겠다는 혼란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한편 <댄스댄스 레볼루션>(2018), <캔서 베이비>(2014) 등 루 양(Lu Yang)의 작품들은 세계에 존재할 수 있는 생체적인 두려움을 끄집어내어 희화화한다.

또 코리 아칸젤(Cory Arcangel)과 페이퍼 라드(Paper Rad)의 <슈퍼 마리오 무비>(2005)는 게임 슈퍼 마리오를 재료로 삼아 최대한의 시청각적 그로테스크함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관람객을 노골적으로 충격과 혼돈에 빠뜨림으로써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세상이 관람객/플레이어를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강조한다. 그리고 하룬 파로키(Harun Farocki)의 경우, 우리가 생각하는 게임의 리얼리티가 사실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미 조작되어 있음을 노출한다. 게임 속 자연은 매우 인위적이며(<평행 II>), 게임의 무한한 세계는 사실 다분히 유한하다(<평행 III>).



전시 전경



3. 요컨대 <게임사회>는 매우 당파적인 사회관을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가 개인적이지 않고 ‘게임적’이라는 것이다. 사회는 예외 없이 모든 개인보다 선행하는 지배적인 총체이고, 개인은 사회가 주는 충격과 혼란을 겪음으로써 그것의 존재를 일부 감각한다. 마치 나뭇가지의 움직임을 통해 공기의 흐름을 미루어 짐작하듯이 말이다. 하지만 말했듯이 이러한 사회관은 당파적이다. 그러니까 모든 관람객이 꼭 그렇게 생각해야 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고 <게임사회>의 작품들이 이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관람객들은 이 전시를 보고 무엇을 느껴야 할까?

아마 어느 관람객은 나에게 덮쳐오는 사회의 충격에 전율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관람객은 지루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는 꼭 충격과 혼란으로 감각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사회는 개인들의 산술적 집합일 뿐이다(‘세 사람만 모여도 사회’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관람객들은 <게임사회>가 지루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사회가 주는 충격과 전율이 계속될 때 남는 것은 지루함과 피로다. 그러니까 <게임사회>의 지루함마저도 전시로부터 가져갈 만한 사회적 감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각주]
 * C. Thi Nguyen, Games: Agency as Art: 이동휘 옮김, 『게임: 행위성의 예술』, 워크룸 프레스, 2022, p. 289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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