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현재 위치
  1. Exhibitions
  2. Review
Issue 208, Jan 2024

서용선프로젝트: 암태도

2023.11.23 - 2024.5.5 문화비축기지 T5이야기관, 영상미디어관, T6문화아카이브

Share this

Save this

Written by

김종길 미술평론가

Tags

기억하는 회화


서울시 문화비축기지 기획전 <서용선프로젝트: 암태도>는 ‘암태도소작쟁의’(1923-1924)를 주제로 한 전시였으나, 그것은 역사를 날줄로 두고 미학의 씨줄이 되감기를 하며 그려낸 대하(大河) 역사화였다. 역사와 미학이 날줄 씨줄로 되감기를 하는 것은 저 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참다운 ‘복승(複勝)’의 지혜를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1)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아침놀』에서 “땅을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두더지의 비유를 통해 아직 빛나지 않은 수많은 아침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2) 서용선은 ‘아침놀’을 그리는 작가다.


그는 오랫동안 역사 속의 어떤 사건들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을 직조하는 새로운 역사화 작업에 집중해왔다. 그것은 오래된 과거의 사건들을 단지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지금 여기의 현실을 반추하고 성찰하며 ‘다시개벽’하기 위한 미학적 고투이기도 했다. 모든 지나간 과거는 현실을 되비추는 우물 거울이지 않은가! 심연에서 표상되는 그늘 그림자의 실체로 파고들어 어그러진 관계들의 그늘과 참혹한 욕망의 그림자를 낱낱이 밝혀낼 때만이 그늘 그림자가 다시 투명해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날풍경’으로서의 역사를 비극이나 희극에 제한하지 않고 희비극이 교차하는, 마치 잠자리 겹눈에 어리는 사건들처럼 다각도로 그림을 표현한다.


그의 작업을 ‘역사화’라고는 했으나 사실 그는 역사의 그늘 그림자 사이에 신화의 무늬, 사람의 무늬, 시간의 무늬는 물론이요, 신화를 이루는 수많은 서사의 무늬들을 새겨 넣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날카로운 사건들의 서슬을 그려냈으며, 그때의 거기를 지금 여기로 불러내어 오버랩시키는 몽타주 회화로 완성했다. 그의 회화는 떠오른 무늬들의 난장이다. 떠오른 무늬들이 곧장 캔버스로 뛰어들어 한 꼴로 서사의 지층을 이루는 뜨거운 ‘불숨’의 현장이다. 그러니 그의 회화는 지나간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늘 지금 여기를 향해 열려 있는 ‘하나의 이야기’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동안 문화비축기지 T5 기획전은 ‘시대와 문화사’를 큰 줄기로 다양한 전시들을 선보였다. 이번에 ‘서용선프로젝트’를 기획한 것은 ‘서용선’이라는 한 작가의 작품이 보여주는 작업의 결이 ‘시대와 문화사’라는 주제와 너무도 잘 맞았기 때문이리라. 실제로 그는 하나의 작업을 진행할 때에 그 주제에 부합하는 자료들을 모으고 분류하고 해석하면서 스케치하고 그에 따라 장면을 구성한다. 그 스스로 작품 제작에 앞서 작품의 의도와 줄거리를 서술하는 시놉시스를 사유한 뒤에 화가이자 조각가로 그 모든 것을 짓고 일으키는 창조자인 셈이다. 게다가 그는 그 자신의 예술세계를 실행 가능한 형식으로 조정하면서 연출하는 훌륭한 드라마투르기(dramaturgy)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암태도소작쟁의’에 주목하고 작업하면서 기록한 작업노트, 스케치 그리고 아카이브는 그의 미술이 그 자체로 ‘시대와 문화사’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다.




<우금치 전투>
2023 캔버스 패널에 아크릴릭 300×216cm



그는 2022년부터 전라남도 신안군의 암태도를 오가며 작업을 진행했다. 암태면 단고리에 있는 (구)암태농협창고에 벽화를 그린 것이다. 암태도는 목포에서 뱃길로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돌과 바위가 많아 ‘암태(岩泰)’라는 이름이 붙었다. 1923년 당시 이곳의 농민들은 수확량의 70-80%를 소작료로 수탈당했다. 그해 가을 암태도 청년들은 청년회를 조직하고 나아가 소작인회를 결성해 지주들에게 소작료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지주들은 그들의 요구를 웃어넘겼고 이에 소작인들은 추수 거부와 소작료 불납 투쟁으로 맞섰다. 지주들은 회유와 협박을 하며 강제징수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소작인회 간부들이 구속되기에 이른다. 농민들의 투쟁은 이제 일제에 맞선 싸움으로 바뀌었다.


1924년 7월에는 ‘아사동맹’을 결의한 농민 600여 명이 목포재판소로 몰려갔다. 이들은 “대지로 요를 삼고 창공으로 이불을 삼아, 입은 옷에야 흙이 묻든지 말든지, 졸아드는 창자야 끊어지든지 말든지, 오직 하나 집을 떠날 때 작정한 마음으로 습기가 가득한 밤이슬을 맞으면서…”(『동아일보』, 1924.7.24)라며 단식 농성을 벌였다. 전국의 노동·사회단체들도 지지를 선언했다. 결국 일제가 물러섰고 지주들도 “소작료는 지주 몫을 4할로 낮춘다. 지주는 소작인회에 기부금 2,000원을 내놓는다”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2023년은 ‘암태도소작쟁의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서용선은 ‘암태도소작쟁의’의 역사를 넓힌다. 그가 그린 장면들은 소작쟁의를 중심에 두고 동심원으로 넓어지면서 근현대사의 장면들과 이어진다. 한 풍경의 정체성은 그 풍경이 자리한 곳의 역사적 층위에서 발생할 것이다. 사건으로서의 층위가 갖는 세목들은 현실의 풍경에 은유와 상징을 모심기하는 순간들을 탄생시킬 것이고, 바로 그 순간부터 풍경은 풍경 너머의 세계와 교접하면서 정의와 윤리와 미학을 질문하게 될 것이다.3) 그에게 풍경 너머의 세계는 동학갑오농민혁명(1894)이었고, 포츠머스 조약(1905)이었으며, 을사늑약(1905), 3.1운동(1919)이었다.




전시 전경



동학농민군은 우금치 전투에서 무너졌다. 전남 장흥의 ‘석대들’로 회군한 농민군은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최후의 일전을 치렀다.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500-600여 명의 농민군은 장흥 앞 덕도에서 서남해안 섬으로 흩어졌다. 덕도의 바닷사람 윤성도가 노를 저어 실어 나른 것. 그들은 “살아남아라!”가 목숨줄이었다. 그렇게 목숨을 건진 농민군의 후손들이 섬에서 들고 일어났다. 서용선은 암태도소작쟁의가 동학과 무관치 않다고 여겼다.


그는 단고리 농협창고에 수운과 해월을 그렸고, <서태석>을 그렸으며,4) <손병희>를 그렸다. 그 그림들의 초상이 문화비축기지에도 걸렸다. 또 그는 일하는 <농민>들을 그렸고, 쓰러진 ‘하늘’ 연작을 새겼다. <하늘1> 옆에 그는 “본인을 사회주의자라 하였으나 사회제도로는 도저히 우리 민중이 살 수 없으므로 그 주의를 취하게 된 것”(『동아일보』, 1924.9.4)이라고 적었다. 또 <소금생산>하는 장면을 그렸고, 사방팔방으로 번지는 외침의 <3.1운동>도 뚜렷하게 새겼다.

1905년 9월 5일, 미국 뉴햄프셔주에 있는 군항도시 포츠머스에서 미국의 중재로 맺어진 러·일 강화조약. 만주와 한국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둘러싼 조약이었다. 쓰시마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은 강화회담을 유리한 위치에서 선점하고 협상했다. 일본제국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는 이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포츠머스>는 역사의 어두운 그늘이다.5) 그는 작품 옆에 “추밀원 의장인 이토오 히로부미가 특사로 미국에 파견하여 루즈벨트 대통령과 노일회담에 따른 제반사항을 협의케 한 가네코 겐다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미국통이며 루즈벨트 대통령과는 동창생이었다는 사실을 안 이승만은…”(뉴잉글랜드 한인사)을 붉은 글씨로 써 놓았다. 이승만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T5 1층 영상미디어관은 암태농협창고의 벽화를 이머시브(Immersive) 미디어 영상으로 제작해 상영했다. <암태도소작쟁의 100년을 기억하다>는 15분 정도의 영상인데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er)’가 본래 그렇듯이 이 영상은 한 편의 애니메이션 영화 같은 회화극(繪畫劇)을 거대한 원형 미디어관에서 생생하게 펼쳐냈다. 압도적인 사운드와 함께 암태도 연작 회화의 장면들이 들고나는 이 현장은 완전히 새로운 전시 체험을 불러일으킨다.


T5 2층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은 246×879cm의 대작으로 완성한 <아사동맹>이다. 싱글채널 비디오 <암태도 이야기> 옆에서 이 작품은 ‘서용선’ 미학의 향일성(向日性)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다. 그는 암각화처럼 <아사동맹>을 새겼는데 마치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시천주(侍天主)와 같았다. 그가 ‘하늘’이라고 생각한 민중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맞서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바로 이 ‘맞섬’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을 새기고 있는 것이리라.

[각주]
1) 김지하는 『우주생명학』(작가, 2018) p. 13에서 “우리 민족이 통일과 함께 참으로 합리적으로 진보와 보수, 좌익과 우익, 남성지향과 여성지향의 오랜 분열을 저 밑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참다운 <복승(複勝)>의 지혜로 융합할 것을 믿는다”고 말하고 있다. 김지하의 ‘복승의 지혜’는 서용선에게 있어서 늘 ‘역사’와 ‘미학’이라는 두 개의 화두가 하나로 용솟음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
2) Friedrich Nietzsche, Morgenro”the: 『아침놀(니체전집10)』, 책세상, 2004, 서문 참조
3) 졸고, 「꽃그늘, 비극의 날풍경-송창 회화의 미학적 고투(苦鬪)」(학고재 개인전 서문, 2017), 참조
4) 그림 옆에 작가는 “동학과 3.1운동은 한국 근대화 민주운동의 근간이 되는 사건이다. 특히 3.1운동은 1920년대 농민운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암태도 소작회의를 이끌어낸 서태석은 목포 3.1운동을 주도하고 이후 항일운동의 희생자가 되었다”고 적어 놓았다.
5) 러·일 강화조약(포츠머스 조약) 제1조는 “일본이 한국에서 정치· 군사·경제적인 우월권이 있음을 승인하고 지도·감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승인한다”이다.


* 전시 전경



온라인 구독 신청 후 전체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구독하기 Subscribe 로그인 Log in

More Articles




메모 입력
뉴스레터 신청 시, 퍼블릭아트의 소식을 빠르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이메일 주소를 남겨주시면 뉴스레터 구독에 자동 동의됩니다.
Your E-mail Send

왼쪽의 문자를 공백없이 입력하세요.(대소문자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