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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7, Dec 2023

약장수와 약속의 땅

2023.11.18 - 2023.12.10 보안1942 아트스페이스 보안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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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휘 파라다이스시티 아트팀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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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삶을 찾아 나선 약장수


‘좋은 회사는 나로부터 좋은 제품은 내 손끝에서!’, ‘품질은 타협이 없다. 생산성 향상 극대화’, ‘납기는 생명, 품질은 자존심’.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지금은 유머러스하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의 철 지난 구호 같은 문장들이 천에 수놓아져 관람객을 맞는다. 이부록의 <로보다방(보조물자다방)>은 서울과 개성을 잇는 ‘굿모닝믹스카페’ 콘셉트 가게로서 개성공단에 제공되었던 로보물자들 중 막대 커피를 음용하는 가상의 이동식 커피점이다. ‘로보’란 ‘로보물자’에서 차용한 단어로, ‘로동보조물자’의 줄임말이며, 남측 기업이 북측 노동자에게 지급한 일종의 복지 물자를 일컫는 용어다. 초코파이로 시작되었으나 이후 봉지 커피, 라면, 동태 등으로 확대되었다


. 관람객들은 개성공단에서 북측 노동자들에게 특히 선호도가 좋았던 막대 커피, 콜라, 초코파이 등 로보다방의 물자들을 들여다보며, 극단의 타자들이 만나 공동의 규칙을 정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작동시켜 나갔던 소통의 과정을 상상해보게 된다. 로보다방은 지난 십여 년 개성공단에서 벌어진 남북한 소통에 대한 경의이자, 이어질 만남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공간 안에는 개성공단을 상징하는 미싱 테이블이 놓여 있다. 공단 폐쇄 조치 이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양측 협상가들이 마주할 협상 테이블 또는 서울과 개성을 오고 갈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며 쉬어가는 테이블을 상징한다.

테이블 위에는 남북 간의 협의에 의해 결정된 생산 표어들과 꽃문양이 합성된 자수 테이블보가 펼쳐져 있다. 실제 해당 자수 공장 노동자들은 거의 자리 변경이 없었기에 마치 자신만의 공간인 듯 인조 꽃 등으로 테이블을 다양하게 꾸몄다고 한다. 이렇듯 한국은 식민지, 분단, 전쟁, 디아스포라와 같은 역사적 사건들을 겪었다. 특히 분단이라는 끝없는 사건은 국경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풍부한 상상을 막거나 매 순간 좌절시킨다.



이부록 <로보다방(보조물자다방)> 2023 
복합 아카이브 설치, 재봉테이블, 로보물자, 
나무, 유리, 네온, 자수, 조화 등 가변설치 2023 
약장수와 약속의 땅 커미션



반면에 이 과정에서 터전을 떠났던 이들이 그들의 새로운 고향에서 삶과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했고, 이제는 약속의 땅이 된 이곳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또한 이들과 함께 새로운 이웃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광주가 고향이면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매리의 작품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은 이웃 ‘고려인 마을’을 통해 이주와 공동체에 대한 조건을 다루고 있다. 이곳은 역사 마을, 관광, 동포, 광복, 독립운동, 우크라이나 난민, 세계고려인연합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커뮤니티가 있으며,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이슈에 따라 확장 중이다.

작가의 시선은 그녀의 이웃이 그들의 희망대로 이주민으로서의 신분을 벗어나, 주류 사회로 진입이 가능할 것인지로 향한다. 작가는 동포이자 이민자인 이들에 대한 지원과 정책이 한국 사회의 정치 및 자본과 긴밀하게 연동되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에 이들이 살고 있는 광주 고려인 마을은 어떤 약속의 땅이 될 수 있을지 질문한다. 작품인 소재인 고려인마을 산하 GBS고려방송(FM93.Mhz)은 공중파 라디오 방송으로 고려인들의 언어인 러시아어로 송출되며, 흥미롭게도 이러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방송국은 한국에서 유일하다. 방송은 성공적인 이민 사회로의 편입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전시장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지향성 스피커로 설치해 들을 수 있게 했다.

과거 종교와 이념이 우리에게 ‘약속의 땅’에 대한 믿음을 주었지만, 이제는 자본과 과학이 마치 새로운 약장수처럼 우리의 미래를 약속한다. 전시 <약장수와 약속의 땅>에서 기획자 임종은은 무한 경쟁과 각자도생의 생존 전략에서 벗어나 더 나은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를 재조직하고 상상하자고 제안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약속의 땅’에서 살게 될지, 공생이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부인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우리가 함께 상상해야 하는 공동체의 조건은 어떠할지 이야기하고 있다. 노순택, 안유리, 임수영, 정소영 외 인도네시아 작가인 벤자 크라이스트(Venzha Christ)나 아이린 아그리비나(Irene Agrivina) 등 아시아 근현대 역사와 경제 논리, 정치사를 넘어 지금 한반도를 관통하는 현안을 살펴보고 공존과 삶을 위한 ‘우리’를 성찰해보게 만드는 전시다.


* 이매리 <7천개의 별과 약속의 땅> 2023 사운드 설치, 혼합재료 가변 크기 2023 약장수와 약속의 땅 커미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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