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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8, Jan 2024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2023.9.14 - 2024.2.1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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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강병직 청주교육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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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함으로 빚은 한국적 모더니즘


필자가 장욱진의 작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8년 겨울 무렵, 정영목 교수의 『장욱진 카탈로그 레조네』(2001) 제작 작업에 참여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미술가의 평생에 걸친 작품 전체의 진품 여부를 확인하고 각 작품에 대한 이력을 정리하는 작업을 위해 필자는 장욱진의 마지막 거처였던 빨간 벽돌집으로 출근했고 작가 부인을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기존의 책이나 연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일화를 들을 때는 마치 미술사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생생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그의 작품들이 비슷비슷해 같은 작품을 다른 작품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있었고 작품 전체에서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파악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수집한 모든 작품을 A4 용지로 인쇄한 후 바닥에 시대순으로 쭉 늘어놓은 다음 사다리에 올라가서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그제야 작품의 어떤 점이 일관되게 반복되는지, 또 어떤 점이 달라지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진품으로 작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개인적으로 25년 전의 바람이 실현된 전시이기도 하다. 회고전을 타이틀로 했다는 점에서 많은 작품이 전시될 것은 예상했으나 이 전시는 그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1920년대 학창 시절의 작품부터 1990년 작고하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을 포함한 유화, 먹그림, 매직펜 그림, 판화, 표지화의 삽화, 도자기 그림 등 270여 점의 작품과 80여 점의 자료들이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이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했을 기획자와 미술관의 열정에 심심한 감사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시골 풍경> 1986 캔버스에 유채 
37.6×22.2cm 개인 소장



이번 회고전은 여러 면에서 남다르다. 장욱진은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유영국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작가로 그동안 크고 작은 전시회가 있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국가 차원에서 그의 작품 세계와 미술사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전시는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모두 4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장면은 ‘내 자신의 저항 속에 살며’를 주제로 한 1부 전시다. 이곳에서는 장욱진이 양정고보 재학 시절에 그린 <풍경>(1937)과 『조선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학생미술전람회’에서 특선상을 받은 <공기놀이>(1938)와 같은 10대 후반의 작품부터 대표작으로 알려진 <자화상>(1951), 추상미술의 실험기에 그린 <얼굴>(1959) 등과 같은 30-50대 시기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두 번째 장면은 ‘발상과 방법’을 주제로 한 2부 전시다. 장욱진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중심으로 조형 의식과 조형 방법을 집중적으로 조망한 전시실로서 그가 어떤 발상을 했고 이를 어떤 방법으로 구성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의 압축과 생략의 진수를 보여주는 <까치>(1958)와 <새와 나무>(1961), 현대적 문인산수화를 표현한 <강변 풍경>(1987)과 같은 주옥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진진묘(眞眞妙)’를 주제로 한 3부 전시다.


장욱진은 불교 신자는 아니었으나 부인 이순경 여사의 법명이 ‘진진묘’일 정도로 불교와의 인연이 깊다. 장욱진은 불교를 주제로 한 다수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가 천착한 주제 중 하나인 가족의 경우, 동물을 그릴 때에도 적용한 가족을 그리는 방식은 불가(佛家)의 ‘인연(因緣)’을 연상하게 한다. 전시실에는 극도의 절제된 선묘로 이순경 여사를 표현한 ‘진진묘’(1970, 1973) 연작을 비롯해 일본인 소장자의 협조로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가족도>(1955)를 만날 수 있다. 네 번째 장면은 ‘내 마음으로서 그리는 그림’을 주제로 한 4부 전시다. 이곳에서는 문인산수화적 전통을 현대적으로 표현한 <풍경>(1978), 유화로 일필휘지의 맛이 표현된 <나무와 산>(1983) 등과 같은 1970년대 이후의 작품이 자리한다.



<공기놀이> 1938 캔버스에 유채 
65×80.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한국 근현대미술사 서술에서 장욱진은 ‘모던 형식의 한국적 서정미를 제시한 화가’, ‘외계와 단절된 내면세계를 심화시킨 화가’ 또는 ‘시끄러운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안식을 찾으려 한 화가’ 등으로 평가되곤 한다. 장욱진에 대해 반복되는 이 같은 언어들은 장욱진을 미술사에서 비켜난 예외적 화가이자 현실이 아닌 자신의 내적 주관에 침잠한 안빈낙도(安貧樂道)적 화가라는 관점을 내재하고 있다. 장욱진에 대한 이러한 평가 방식은 과연 정당하고 적절할까?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장욱진의 작품 세계가 미술사 바깥에 있지 않았으며, 그가 살아온 시대적 상황과 미술 동향을 자신만의 예술적 방식으로 승화하고자 고군분투했고 그 결과 시적 상징성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작품 세계는 그림과 시를 다르게 보지 않았던 전통 회화의 시서화(詩書畵) 삼절(三絶)에 대한 현대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1950-1970년대의 한국 미술은 시(문학)를 떠나 추상의 형식과 순수성에 집중하던 때이고 이러한 모더니즘 미술의 관점에서 볼 때 장욱진의 작품 세계는 낯설거나 이질적이었다. 그러므로 장욱진의 작품 세계를 보다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의 형식주의 미학에서 밀려난 문학성의 회화적 의미와 가치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전시는 장욱진의 시적 상징성이 어떻게 현대 회화적 어법으로 구현되는지를 예시한다. 그가 평생에 걸쳐 그린 까치, 나무, 해와 달 등 일상적이고 친근한 모티프들은 장욱진의 작품 세계와 삶의 지향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티프가 된다. 우선 까치는 작가 자신에 대한 심리적 투영체이자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상징하는 영물이며 자연과 문명의 공존을 상징하는 현대적 도상이다.




<여인상> 1979 캔버스에 유채 
15×10cm 개인 소장



나무는 계절과 인생을 담아내는 시간성을 상징하고, 해와 달은 전통 문화의 양과 음에 대한 표상이 된다. 특히 장욱진의 시적 상징성은 30호 크기의 화면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조형된다. 점 하나, 선 하나를 다룸에 있어 그의 정신은 예리했으며 완벽한 조형을 향한 의지는 십자형(+), 삼각형(△, ▽), 마름모(◇), 원형(○), 엑스형(×)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이러한 화면의 조형 방식은 소재의 반복이 가져올 수 있는 지루함에 미학적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전시는 ‘가장 진지한 고백’을 부제로 하고 있다. 장욱진이 매진한 60여 년간의 화업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독하리만큼 철저한 성찰과 회화적 고백의 여정이었다. 당시의 한국 근현대미술이 서구의 미술 사조를 대척점으로 하여 주장과 선언을 내세운 외부로의 시선이었다면, 같은 시대를 살았던 장욱진은 내부로의 시선에 주목했고 이를 시적 상징의 세계로 표현했던 것이다.


이러한 장욱진의 조형 세계는 자연과 인간, 문명과 전통, 아이와 어른, 현실과 이상이 공존하는 세계이며 구상과 추상이 조화되는 세계다. 이러한 다름의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장욱진이 찾아낸 조형 어법이 바로 ‘심플’함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정신없이 바쁜 현대의 일상을 살아가는 틈 사이에서 ‘심플’함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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