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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8, Jan 2024

카틴카 램프_My Frame Your Frame

2023.11.23 - 2024.1.10 리안갤러리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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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예지 컨트리뷰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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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속의 그대


바스락거리는 하얀 이불, 햇살, 부스스 흩어진 머리카락, 보드라운 귓불에 달린 에메랄드, 반짝, 하고 빛나면 고개를 돌린 옆모습. 뒷모습. 그리고 비스듬한 얼굴. 물끄러미 바라보는 눈동자. 석양처럼 붉게 타들어 가는 눈망울. 무수한 말을 가라앉히는 입술. 백지처럼 깨끗한 이마와 창백한 두 뺨. 얼어붙은 호숫가의 바람과도 같이, 마음의 수면을 훑고 지나가는 그 사람. 기억 속의 그는 언제나 부분으로 남아 있다. 온전한 그의 초상을, 나는 가질 수 없다. 하염없이 세부에 집착할 뿐이다.


어쩌다 걸려든 작은 조각들, 무너져 내린 관계의 파편들, 이제는 쓸모없어진 그 모든 아름다움은 나를 뒤흔든다.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를 뒤쫓는다. 그는 계속 프레임 밖으로 흘러넘친다. 공중에 떠다닌다. 스르르 풀려 나간다. 그는 이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다. 나는 그 사실을 천천히 받아들인다. 카틴카 램프(Katinka Lampe)의 그림을 보며 소리 없이 울었다.

관람객의 얼굴을 적셔야 할 눈물은 그림 속으로 흘러들어 인물의 윤곽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살갗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캔버스에 녹아들었다. 바깥층, 얇은 막에 사람이 발려 있었다. 캔버스 천의 결이 살결이 되었다. 인물은 엷게 스며들고 단색의 배경은 그 위를 덮으려고 했다. 그 경계면이 생경해서 자꾸만 눈을 깜박였다. 감았다 떴다 하는 사이, 얼핏 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중력도 느껴지지 않는 두 발과 껴안는 힘이 휘발된 두 팔을 보며, 그림 속 인물과 내가 얼마나 다른 세계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림이라는 프레임을 통해 잠시나마 마주할 수 있었지만, 그 만남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쩌랴. 애초에 제약 있는 만남이었던 것을.



<2415221> 2022 캔버스에 유채 
240×150cm Courtesy of Katinka Lampe



램프의 인물들을 뒤로하고 터벅터벅 걸어 나오는 길. 미셸 투르니에(Michel Tournier)가 에두아르 부바(Edouard Boubat)의 사진에 부친 에세이들이 떠올랐다. 부바와 함께 펴낸 『뒷모습』에서 투르니에는 이렇게 쓴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은 자신의 얼굴 모습을 꾸며 표정을 짓고 양손을 움직여 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 모든 것이 다 정면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이면은? 뒤쪽은? 등 뒤는?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 뒤쪽이 진실이다!”* 램프의 그림도 이와 같은 이면의 진실을 함유하고 있다. 부바의 사진처럼 말 그대로 뒷모습을 촬영해 그림으로 옮기기도 하지만, 초상화(또는 초상사진)의 기존 어법을 비틀거나 깨뜨리려고 시도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램프는 꾸며낸 포즈와 제스처, 한정된 구도에 갇힌 인물을 그리지 않는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모델과 소품을 구해 사진 촬영을 하고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전형적인 인물을 그림 안에 집어넣는 건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통상적으로 프레임 안에 들어와야 하는 것들이 아니라 프레임 밖에 있는 것들, 즉 정면이 아니라 측면, 뒷면, 머리보다는 몸통과 팔다리가 더 중요하다. 그림에 얼굴이 등장하더라도 모델이 누군지 식별하거나 인물의 신분과 품위, 체면을 부각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램프의 인물들은 저마다 안개처럼 주위를 감싼다. 은은하게 번진 물 자국이나 낯선 향이 섞인 공기처럼 모호하면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람객은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해도 어느새 깊이 빠져들고 그리워하게 된다. 그런 아련함의 정취가 그림과 그림 사이로, 프레임의 안과 밖으로 번져 나간다. 램프의 초상 위로 마음속 그 사람이 한 겹 드리워진다. 그때 그 모습으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아스라한 형체로. 램프의 프레임은 마음의 프레임이다. 마음 가는 대로 확대하고 잘라낸다. 때로는 부분이 전체보다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기는 마음의 진실에 부합하는 상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램프의 그림은 기억의 움직임을 반영한다. 흔들려도, 정확하다. 불완전해도, 빛난다.

* Michel Tournier & Edouard Boubat, Vues de dos: 김화영 옮김, 『뒷모습』, 현대문학, 2020, p. 5

* <6580211> 2021 캔버스에 유채 65×80cm Courtesy of Katinka Lam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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