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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8, Jan 2024

2020 수림미술상 수상작가전: 오묘초_변형 액체

2023.11.21 - 2024.1.13 수림큐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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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독립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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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형태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 이하 SF)은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에 기반한 문학 장르로 순수한 과학적 사실이나 공상을 다룬다. SF 비평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르코 수빈(Darko Suvin)은 SF 장르를 ‘인지적 낯섦(Cognition Estrangement)’과 ‘노붐(Novum)’이라는 두 가지 특징으로 규정한다. ‘인지적 낯섦’은 낯설지 않은 것과 낯선 것의 상호작용이며, ‘노붐’은 우리의 세계관이 바뀔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새로운 것’을 의미한다.1)


전시 <변형 액체>는 작가 오묘초가 집필하기 시작한 SF 소설 『메모리 서쳐』(2022-)의 상상력과 세계관 안에서 탄생한 사물들을 현실 세계로 소환했다. 소설은 기후 변화로 지상에서의 삶이 불가능해진 미래를 배경으로, 기억의 전이가 가능해져 타인의 기억을 편집해 사고파는 디스토피아로 그려진다. 전시는 소설에서 출발해 미래의 공간과 그 안에 존재하는 지성체에 대한 상상과 가정들로 발생하는 미래시제의 정동(affect)을 다룬다.

전시의 시작(2F)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매캐해지는 우리 행성 지구에 대한 은유로 가득하다. 작가가 리서치를 위해 떠났던 어느 협곡을 닮은 퇴적층의 황색 심상은 공간을 장악한다. 노란색 시트를 덧입힌 유리창으로 비치는 누런빛은 창밖 너머로 보이는 도시를 그대로 덮쳐 인류에게 닥친 작금의 위기를 알린다.


나무와 송진, 바다 속 버섯과 말린 수초로 조립되거나 나무 외피를 떠낸 실리콘, 황동 조각이 공간에 흩어져 자연물과 인공물의 경계를 흐린다. 해수면(1F)으로 내려오면 광이 나는 거대한 스테인리스 구조에 유리 덩어리가 배아처럼 엉겨 붙거나 매달려 깊은 바다 속으로의 유영을 준비한다. 금속 몸체에 달려 작은 인기척에도 소스라치며며 흔들리는 가늘고 긴 서지컬 체인은 해수면의 윤슬처럼 반짝인다.

촉수 같은 스테인리스 몸체와 유리 뇌로 구성된 미래의 지성체 <누디 헬루시네이션(Nudi hallucination)>을 마주하는 것은 깊이 침잠해 내려가야 하는 어두운 해저(B1)다. 미래의 순간을 천천히 유영하는 차갑게 반짝이는 생명체, 액체처럼 흐르는 이 가변적인 존재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해저에 몸을 숨기듯 투명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살아왔다. 이 작품이 오묘초가 2022년에 선보인 기억 전이 생명체이자 SF에서 출발한 서사의 시작이라면, 이번 전시는 다른 공간과 사물이 연결되며 확장된 일종의 스핀-오프(spin-off)인 셈이다.



<편자모양의 어떤 것>
2023 황동나무 100×70×70cm



작가는 미래 인류가 정착하게 될 공간으로 우주가 아닌 해저를 꼽는다. 인간이 우주를 탐험한 횟수보다 해저를 탐험한 횟수가 적다는 사실, 인간이 탐험한 바다는 전체의 5%며 정밀하게 지도화된 해저는 전체의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복기하면 해저는 확실한 미지의 세계다. 3개 층을 위에서 아래로 이동하며 관람하는 전시 동선과 점차 차갑게 변화하는 공간 온도는 지층과 해수면, 해저의 심상을 수직으로 구현하고 동시에 작가가 그리는 미래상을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한다.


전시는 기억의 전이가 가능하다는 특수한 가정을 외삽(extrapolation)2)하고 현실에 새로움을 더하는 ‘노붐’으로 기억을 담고 있는 지성체를 제안한다. 인간의 기억과 인공 사물이 기묘하게 혼합된 이 창조된 세계는 물질과 서사가 마찰하는 생태 공간으로 재편되며 ‘인지적 낯섦’을 유도한다. 이렇게 충족된 SF의 조건들은 소설의 문자가 빚어낸 서사를 시각적인 사물들로 경험하게 한다.

거대사물(hyperobject)3)의 개념을 제안한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은 한 사물의 역사는 그 사물에 일어난 모든 사건들이며, 그 근원적 형태는 트라우마라고 이야기한다. 기후위기는 그 자체로 거대사물이며 트라우마는 인간 자신이다. 인류세의 급격한 위기는 우리의 미래를 다르게 상상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인간이 상상하는 미래는 얼마나 협소한가! 과거-현재-미래에는 분명한 경계도 형태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 경계를 쪼개고 메우는 것은 결국 인간의 기억이다. 미래의 형태는 어쩌면 우리의 기억에서 끄집어낸 조각의 단편일지 모른다. 미래와 기억에 대한 오묘초의 SF적 상상력은 인간의 능력으로 경험되는 사실에서 벗어나 경험 너머에 존재하는 실재들을 사변(思辨)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미래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

[각주]
1) 이동신, 『SF, 시대정신이 되다』, 21세기북스, 2022
2) SF의 중요 기법 중 하나로 특수한 가정을 현실에 삽입해 그 결과를 상상해 보는 것을 말한다. 위의 책, p. 135
3)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의 인식을 벗어나는 객체로 시공간에 엄청나게 분산된 것들을 말하며, 그 예로 기후 위기, 자본주의, 블랙홀을 들 수 있다. Timothy Morton, Hyperobjects: Philosophy and Ecology after the End of the World,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2013


* 전시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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