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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김병호_기억에 홀리다

2023.12.22 - 2024.1.21 WW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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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진 현대미술연구자 ·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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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과 낙관: 미술에 대한 어떤 태도


전시 제목 ‘기억에 홀리다(Enchanted Memories)’는 ‘기억’에 대한 두 개의 접근법을 담고 있다. 제목의 영문 부분은 무언가에 매료되었던 기억이라는 의미를 띠고 있으며, 국문은 한 사람을 매료시키는 요소로서 기억을 가리키고 있다. 이처럼 ‘기억’에 대한 다중적 의미를 두고 우리는 전시가 제시할 장면이 작가 본인의 기억에서 온 것으로, 또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와 같은 매료의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며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타인에게 나의 기억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널리 약속된 형식의 적절한 사용이 필요할 것인데, 김병호는 바로 이 지점에서 기하학적 형태, 금속이라는 재료, 부품을 조합하는 작품의 생산 방식, 연작의 다양한 변주 등을 이용하여 익숙하면서도 낯선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김병호 작업의 매끄러운 표면과 철저한 수학적 계산 후 조립하거나 용접한 결과물은 현대사회의 대량생산 체계를 거쳐 생산된 제품을 닮았다.

1층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타원구 여러 개가 접합되어 있는, 오뚝이처럼 서 있는 조각 <8 Symmetrical Gardens>(2023)가 가장 먼저 보인다.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기 때문에 위태로워 보이면서도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모습에는 어딘가 긴장감이 서려 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에는 청동빛의 무광 표면, 금빛의 유광 표면이 혼합되어 있다. 관람자는 곳곳에 창문이 있는 1층 전시 공간을 배경으로 광택이 나는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둥그런 표면 위에는 하나의 상이 아니라 여러 각도와 왜곡을 지닌 나의 모습이 군데군데 맺혀있다. 그 옆의 방으로 들어가면 천장 전체에서 균일하게 내려오는 빛 아래, 그리고 관람자의 머리 위에 금빛으로 윤이 나는 <28 Symmetrical Gardens>(2023)가 수평 방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김병호가 “혹”이라고 지칭한 바 있는 원형 요소들이 가로로 길게 뉘인 가지에 달린 열매 또는 물방울처럼 촘촘하고 일정하게 뻗어 나와 있다.



<96 Vertical Gardens> 2023
스테인리스 스틸에 도금, 파우더 코팅
189×178×98cm



탑 주변을 거닐듯 조각의 면면을 살필 수 있게 조성된 전시 동선을 따라 걸으며 이번 전시작의 제목 대부분에 ‘정원’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작가는 정원이란 “인간이 손을 댄 자연”, “꾸미고 연출한 것”, “우리가 그리는 이상을 반영하는 것”, “도시 속에서 인위적으로 계획해 만드는 자연”을 대표한다고 정의한다.


정원에 관한 작가의 정의와 유사하게 작품을 구성하는 세부 단위인 타원구와 “혹”은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것은 설계도상의 직선과 평면을 기반으로 조형된 형태들이다. 유기적인 동시에 인위적인 이 둥근 모양들은 그의 작업 전반에 부품으로 사용된다. 공공장소에 놓이는 대규모 영구 설치물부터 여러 규모의 화이트큐브에 일정 기간 놓이는 조각 작품까지 김병호는 규격화된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데 적극적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작가는 연작 단위로 작업을 전개해 왔으며, 이번 전시에 포함된 작품들은 대개 과거에 대규모 설치 작업으로 구현된 바 있다. 일례로 색색의 알루미늄 선으로 구성된 <Neat and Tidy Garden>(2021)은 김병호가 여러 색채의 직선을 촘촘히 배치한 패턴으로 노량진 소재의 현대자동차 건물 외관을 둘러싼 <도심 속의 정원 - HMC>(2017)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연관성은 전시 공간 내부의 작품들이 외부의 더 큰 영역과 연동되어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더욱 직접적으로 감지토록 한다. 사전에 작가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없었더라도 어쩌면 그의 작업은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이미 환경적으로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밀한 수치가 명시된 설계도에서 출발하는 김병호의 작품을 기록으로 남긴다면 작품 사진에 더불어 그에 사용된 재료의 사양, 각종 도면, 프로그래밍 코드, 의뢰 주체 및 협력 업체의 정보 등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작가는 작품의 제작 과정에 큰 주의를 기울이며, 이와 같은 내용을 『김병호 더 매뉴얼』(2022)이라는 책으로 정리해 발간했다. 제작 과정에 대한 조명은 그의 작업의 성격이 우연보다는 치밀한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작업은 기술을 매개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적확한 형태, 그것의 반복, 균형의 통제 등 고도로 정제된 대상에 대한 매혹과 낙관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압도하는 규모보다는 작업의 정밀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이번 전시는 작은 정원처럼 작가가 연구해 온 형태들을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있으며, 여기에 수반되는 인위적인 개입 또는 구조적 개입을 가리는 것 없이 내보이고자 하고 있다.  


* <8 Symmetrical Gardens> 2023 청동에 컬러레이션 150×99.7×9.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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