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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원더랜드

2024.1.11 - 2024.2.24 리만머핀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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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형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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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만나게 될 세계를 꿈꾸며


“그럼, 넌 분명히 도착하게 되어있어”.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고양이가 앨리스에게 한 말이다. 나아갈 길이 이리저리 숨어있어 그 끝이 묘연한 여행을 자신만의 조형적 방법으로 이어가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들의 작품을 거쳐 도착하는 곳은 어디일까?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원더랜드>는 유귀미, 현남, 켄건민(Ken Gun Min), 임미애 네 작가의 작업이 형상화하는 미지의 세계를 소개한다. 참여 작가들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생까지 넓은 세대를 아우르며 다양한 지리적 위치를 거쳐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들에게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은 실제이면서도 예상치 못한 상황 혹은 장애물과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 밖 차원의 곳이기도 하다. 가깝고도 먼 곳, 분명히 경험했지만 꿈처럼 요원한 것, 아직 오지 않았음에도 기대되는 것들. 이것들이 한데 모여 네 명의 작업적 자양분이 된다. 본 기획은 충돌하는 여러 힘의 축들 사이에 자신을 서게 하는 이들의 태도를 한데 묶어 관람객들을 비논리와 초월적 감각의 지대로 이끌고자 한다.

전시장은 다양한 매체를 오가는 각 작가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다루며, 이들의 시야에 포착되는 이상한 나라를 역설적인 조형성을 통해 보여준다. 네 작가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유심히 보았던 대상이나 사건을 자신의 조형적 탐구의 준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같은 갈래 위에 있다. 다만 그 세상은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자의적인 광경들로 불쑥 모습을 바꾸어버린다.




임미애 <Molotov> 2023 캔버스에 유채 
182.9×152.4cm Courtesy the artist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Creative Resource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장면 전환은 각 행위자들이 천착하고 있는 주제와 관심사에 따라, 그 정도와 방법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관람자는 마치 방향을 잃은 동화 속 주인공처럼 호기심과 긴장감을 동시에 품은 채 전시장을 거닐며 눈앞에 펼쳐지는 네 장(scene)의 원더랜드 간의 연결고리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유귀미의 회화는 마치 눈앞 유리창 앞에 뽀얀 물안개가 뒤덮인 듯 몽환적이다. 비밀스러운 풍광을 담고 있는 그림들은 대부분 그가 실제로 겪었던 일상 중 자신의 뇌리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인상의 조각들로부터 시작된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두 점의 대형 회화는 한국과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시공을 오가며 생활했던 그가 호수와 한강이라는 물과 가까운 장소에서 느꼈던 아련한 기억들을 배경으로 한다. 낮과 밤의 다른 시간을 나란히 놓고 보자면 특정한 시간대에 도드라졌던 색감 전체가 화면을 지배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실로 그의 작업에서 색채는 서사에 드라마틱한 입체감을 부여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Green Lake>에서는 오후 시간 어느 즈음 누군가 홀로 앉아 있는 초록 의자의 색이 호수로 번져나가 작품의 제목으로 연결되고, <Night River>에서는 한강 어딘가에 걸린 조명의 노란빛과 짙은 검정의 하늘이 주변의 사물들을 감싼다. 선명한 외곽선으로 마감되기보다 산란하는 음영 속으로 사라질 듯 몽글거리는 형태는 그렇게 작가의 심상을 대변하는 색의 옷을 입고 각자의 화면에 들어선다. 그에게 회화란 지금과 스쳐간 과거, 그리고 가닿지 못한 미래가 일시적으로 교차하는 상상의 플랫폼이 되어준다.



켄건민(Ken Gun Min) <2022-1988> 
2023 유채, 안료, 비단 자수실, 비즈, 크리스털 
203.2×162.6cm Courtesy the artist, Shulamit Nazarian,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Edward Mumford



한편 현남은 현대인이 몸담고 있는 도시에 편재하는 물리적, 구조적 특성으로부터 초현실적인 조형 언어의 가능성을 본다. 그가 짓는 풍경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면서도 현실의 양태들을 기민하게 함축한다. 특히 건축, 미술사, 음악, 조각, 게임 그리고 회화 등 인간이 구축해 온 여러 갈래의 문화적 참조는 작가가 자신이 사는 시공을 마음껏 전치시키고 재편집할 수 있는 동력이다. 최근 그의 조형 언어에서 도드라지는 지점은 축소와 확대, 음각과 양각, 구축과 해체와 같은 양극의 논리를 전치시키는 것이다. 이는 대부분 가소성이 높은 공업 스티로폼에 음각으로 구멍과 통로를 내고, 이 공백에 에폭시와 같은 재료를 쏟아부어 다시 양각의 부피를 얻어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이 반복되는 뒤집기의 과정은 에폭시와 녹아내린 스티로폼, 표면에 엉겨 붙은 이질적인 재료들과 만나 극대화되며, 예상치 못한 질감과 부피를 가진 구조물이 되어 관람객 앞에 놓인다. 땅과 좌대 위에 우뚝 솟은 조각은 작가가 여러 재료와 도구에 수차례 손과 신체의 힘을 동원해 구성한 일종의 디스토피아적 기념비다. 그리고 이 형상은 가치 판단의 기준과 역사의 방향성마저 묘연해진 채 부유하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켄건민이 표현하는 것들은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을 넘어 일견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 그는 성경이나 고대 신화와 같은 허구적 서사들을 추출해 실제 사건과 결부시키고, 이를 다시 한번 초월적 장면으로 구현하는 단계를 거친다. 여기서 일종의 과잉의 방법론이 의도적으로 채택되는데, 그는 인간이 쉽게 보지 못하거나 보기를 꺼려하는 상황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도록 한다. 가령 <1988-2012> 속 휘몰아치는 구름 가득한 하늘 아래 모습은 그의 태피스트리 작업을 통해 반짝이는 아이러니가 된다.


색색의 실과 작은 구슬로 촘촘하게 꿰어진 호랑이의 사체는 끝을 알 수 없이 펼쳐진 들판의 꽃과 사방으로 뻗어가는 태양의 광원과 대비되어 대상의 죽음을 더욱 연극적인 것으로 이끈다. 그의 몇몇 작품 제목은 특정한 시간대를 지목하고 있는데, 이는 여러 환경적 변화 속에서 스스로에게 각인된 기억들이 각 화면의 자양분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는 타지에서 느꼈던 사회의 명암과 부조리, 새로운 관계를 향한 호기심과 동경, 나의 뿌리를 향한 그리움과 같은 다층적인 맥락을 상징적 기호들로 치환한다. 이 공감각적 번안을 통해 비로소 개인적 관념은 다수를 향한 열린 서사로 조금씩 번져 나간다.  



전시 전경 Courtesy the artists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Creative Resource



임미애의 회화 속에는 폭발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기묘한 생명체들이 산다. 신화 속 등장하는 동물이나 순식간에 자라나 주변을 위협하는 식물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는 작가의 과감한 필치와 이로부터 만들어지는 마티에르, 속도감을 통해 구체화된다. 때로 그려진 객체의 모습은 섬뜩하기까지 한데, 신체를 뒤덮을 만큼 큰 눈과 피부의 돌기, 뒤엉킨 몸을 가지고 화면 밖으로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다.


하늘과 땅, 바다 위와 심해까지 어떠한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을 듯한 입체적인 모습은 그의 삶 전반에 켜켜이 쌓인 디아스포라적 기억과 타자의 위치에 대한 경험에 뿌리를 내린다. 중심에서 이탈한 현실의 양태, 팬데믹 이후 더욱 가속화된 인간 존재의 소외, 보통의 범주가 왜곡시키는 가치 판단의 왜곡. 이와 같은 사회의 불완전한 단면은 작가의 실험 속에서 추상과 구상의 경계면을 오가는 비정형의 객체들로 다시 태어난다.

특히 그가 참조하는 성경과 신화, 문학 등 폭넓은 문화적 영역의 서사는 그가 창조한 이미지와 임시로 결합하며 수많은 공동체에 포섭할 수 될 수 있는 열린 상태의 존재들을 빚어낸다. 결국 그의 그림들은 하나의 개념과 위치에 고정될 수 없는 사회의 무수히 많은 자아들을 보듬고, 그들의 감각과 공명한다.

그들의 시선은 노스탤지어적이고 처연하게 아름답다. 동시에 네 개의 목소리는 이미 우리 앞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거나 사회에서 간과되어 온 화두를 잊지 않을 것을 요청한다. 공동체로부터의 소외, 무뎌진 도시 환경 속에서의 삶, 지리적.문화적 경계에서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어제에 대한 그리움. 결국 이 모두는 지금 여기에 없지도, 그렇다고 명징하게 존재하는 것들도 아닌 무언가에 관한 것이다.


잃어버렸거나 희미해진 어제를 현재로 소환하는 힘. 이곳에 모인 네 명의 행위자들은 조각난 세계를 그러모아 앨리스가 마주친 풍경 속에 있을 법한 기묘한 형상을 빚어내고 있다. 누군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물리적 통로를 거쳐 둔화된 일상 속 지각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그들이 아무런 제약도 없이 더 많은 우주의 가능태를 생산할 수 있는 이상한 세상을 희망하면서.  


* 전시 전경 Courtesy the artists and Lehmann Maupin, New York, Hong Kong, Seoul, and London Photo: Creative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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