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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09, Feb 2024

현승의_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2024.1.5 - 2024.1.21 인천아트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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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노 유키 미술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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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 깊은 바다: 흑백 톤의 농담


모든 생명체는 바다에서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이미 수십 번이나 들었다. 그 이야기는 지난 세기에 관한 것만도 아니다. 지금도 해외에서 온 화물선이 도착하고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이민을 떠나고, 해저에 매설된 광케이블로 전세계 사람과 통신하듯, 바다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받쳐 주고 있다. 생명의 시초처럼 바다에서 태어나는 일이 이제는 없다 해도, 우리는 바다의 큰 도움을 받고 살고 있다 - 정작 바다를 실제로 보는 일은 잘 없어도 말이다. 여전히 바다는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바다는 삶의 터전보다 하부구조에 있다.


바다란 고기를 잡고, 화물을 실어 오고, 사람을 태우고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영역(zone)이다. 무언가 오고 다시 떠나는 감각은 하늘보다 더 뚜렷하다. 하늘은 (한자 그대로) 텅 비어 있다면(空: 빌 공), 바다는 영토 즉 우리가 사는 곳의 끝/한계를 윤곽으로 표시한다. 말하자면 영역인 동시에 점(點 spot)으로 만나는 곳, 즉 임계점이다. 바다는 비어 있지 않고 어딘가, 무언가, 그리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깊이 든 곳이다.

한 사건이 연결된 감각을 첨예화했다. 2023년 8월 24일, 일본의 도쿄전력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오염수(처리수)1) 방류가 확정된 뉴스였다. 이 뉴스는 먹는 것을 비롯해 유통되는 것, 궁극적으로 미래 시제까지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했다. 한 대상을 두고, 안전과 위험은 그것 자체와 여파라는 점과 영역을 아울러 판단하게 된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위협이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넓고 깊이 내재한다는 식의 해석이다. 이는 어떤 이미지를 보고 우리가 수용하는 감각에도 해당한다. 현승의의 개인전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의 전시장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엄밀히 말해 바다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화면으로 구성된 회화 작업이다. 그간 작가가 제주도의 사회 역사를 주목하여 작업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바다라는 더 넓은 대상에 주목하였다. 작품을 보면 여러 시점에서 각각 그려져 하나의 화면으로 펼쳐진다. 부분적으로 확대되고 일부가 잘린 이미지에서 우리는 어시장에서 파는 생선, 갯벌에 어떤 바닷새가 남긴 발자국, 관광지 마스코트 캐릭터, 정치인 기자회견,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에 밈(meme)으로 빈번히 등장하는 컷을 알아볼 수 있다.

같은 크기의 화면이 제각각 다른 이미지를 보여준다. 마치 관제탑의 CCTV 모니터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이미 벌어진 일의 실마리를 발견하고 사건의 전체상을 규명하는 것과 달리, 보는 사람은 앞으로 무언가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데서 오는 불안 속에서 확신과 불신이 뒤섞인 시선을 보낸다—우리가 보는 이 작품의 제목은 <징조들>이다. 일상 속에 의미를 찾아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병리학이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것에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생태학적 병리학이 되었다고 본 조지 마이어슨(George Myerson)의 주장처럼,2) 우리는 한 이미지를 출발점 삼아 여파를 머릿속에 확신과 불신으로 그려간다.


오염수가 끼치는 영향과 타격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대상에 순식간에 자리하게 된다. 작품은 ‘오염수 방류’라는 한 사건의 요약(summary)이나 종합(integration) 아닌 부분적 모음(compilation)인데, 이는 일상에 들어서게 된 예기적인 시선으로 그려진다. 일부분만 보이는 컷으로 구성된 화면들은 한 곳에서 보는 뷰(view)를 갖는 대신 갈기갈기 찢긴, 다각도의 여파로 분산된다.

생선회를 써는 장면을 그린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는 수질오염의 위협 때문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진지하면서도 가벼운, 농담조의 태도가 보인다. 농담은 거짓이 아니다. 진실과 허구를 절반씩 담는다. 그리고 (단어 [弄談 joke/濃淡 light and shade] 그대로,) 이 양극단의 것들이 스며든 상태다.3) 흑백 톤의 농담은 바다를 둘러싼 중대하거나 하찮은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작가가 그리는 바다는 우리가 이미 너무 많이 봐서 이제는 안 봐도 그려질 정도로 익숙한 뷰를 가지지 않는다.


오염수에서 출발한, 바다를 둘러싼 이야기의 대부분은 육지에서, 많은 연결을 가진 이곳에서 더 활발하다. (보이지 않지만) 연결이 넓고 깊은 바다 앞에서 언제 무엇이 올지도 모르는,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농담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확신과 불신 사이에서, 어쩌면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이랬던 적도 있었지!” 하고 웃어넘기기에는 어려웠던 시점(時/視點들)을, 그 복잡한 시점들을 가진 시기라는 영역을 우리가 공유하는 감각을 정확히 ‘미리’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래가 어떻게 -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흘러가든지 간에.  


*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몰라> 2023 장지에 혼합재료 27×35cm 사진: 김현진

[각주]
1) 사실상 오염수와 처리수와 다른 개념이다. 방사성 물질에 접촉하여 오염된 물이 오염수이고, 오염수에서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여 기준치를 충족시킨 물이 처리수이며, 현재까지 바다로 방류된 것은 후자이다. 본 글에서 처리수라는 말 대신 일상적으로 접하게 된 오염수를 처리수 뜻으로 쓴 점을 밝힌다.
2) ジョージ・マイアソン, 野田三貴訳, 『エコロジーとポストモダンの終焉』, 岩波書店, 2007(조지 마이어슨, 『생태계와 포스트모던의 종말』, 일역본), p. 66-70
3) 권 사에(권사영), 콘노 유키 옮김, 『조난당하신 겁니까?—그러세요? (불신지옥 편) 』중 「정말로, 절망으로,」, 2023, pp.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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