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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212, May 2024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2024.3.27 - 2024.6.16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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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정 미술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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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안과 밖: 여성의 존재와 목소리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Unsullied, Like a Lotus in Mud)’이라는 전시 제목은 사회적 편견과 제약이라는 진흙 속에서도 더럽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낸 이름 없는 수많은 여성들의 순수하고 고귀한 마음에 대한 비유이다. 2년여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오랜만에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이 대규모의 전시는 그 동안 한자리에서 보기 어려웠던 국내외에 소장된 92건의 명작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자, 젠더라는 관점을 통해 동아시아의 불교미술과 사회 속에서 여성의 역할과 주체성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전시는 크게 1층에서 펼쳐지는 ‘다시 나타나는 여성’ 1부 전시와 2층의 ‘여성의 행원(行願)’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전시는 불교미술 속에 재현된 여성상을 ‘여성의 몸: 모성母性과 부정不淨’, ‘관음: 변신變身과 변성變性’, ‘여신들의 세계: 추앙과 길들임 사이’ 3개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섹션은 모성을 지닌 성스러운 어머니이자 집착과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부정한 육체의 소유자로서의 여성을 대하는 사회의 이중적인 시선, 관음의 형상으로 재현된 여성의 모습, 여신의 모습으로 현현하여 추앙의 대상이 되는 동시에 부처의 감화와 가르침을 받아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로서의 여성에 대한 교차되는 시선을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다.


싯타르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과 마야부인 사후 싯타르타를 길렀던 이모이자 양모인 마하파자파티(Mahapajapati-Gotami)를 그린 <석가탄생도>(일본 혼가쿠지)와 왕진붕의 <이모육불도>(보스턴미술관)은 모성의 가장 큰 두가지 형태인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여성을 모습이 불교 미술에서 어떻게 재현되었는가를 보여준다.

한편, 무로마치 시대의 <구상시회권>(규슈박물관)은 사람의 시신이 부패하며 변해가는 아홉 단계를 보면서 수행하는 구상관에서 유래했는데, 젊고 아름다운 여성의 육체에 벌레가 들끓고, 들짐승과 까마귀의 먹이가 되어 형체를 알 수 없는 백골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의 과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다. 부정(不淨)의 근원으로서 여성의 몸에 대한 경계가 자극적이면서 감각적인 필치로 묘사되어 보는 이들의 등골을 서늘하게 한다.



2부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호암미술관



이와 같은 여성의 육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몸은 ‘관음’의 형체를 빌어 적극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불교에서 관음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며, 동아시아 사회에서 자비는 종종 모성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관음은 자비로운 모성을 가진 ‘여성’처럼 표현된다. 아이를 무릎 위에 안고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으로 표현된 청대 <백자송자관음보살좌상>(영국박물관)은 모성을 매개로 여성이 관음으로 변신/변성되는 지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2부 ‘여성의 행원’에서는 사회적 편견과 억압적 제도에서 벗어나 열렬한 불교미술의 후원자이자 제작의 주체로 살아가고자 했던 여성들을 조망한다. ‘간절히 바라옵건대: 성불成佛과 왕생往生’, ‘암탉이 울 때: 유교사회의 불교여성’, ‘여공女工: 바늘과 실의 공덕’ 세 부분으로 나뉜 전시공간에는 왕실과 민간의 여성들의 후원으로 조성된 불화와 불상, 사경, 복장물을 비롯하여 머리카락으로 자수를 한 불보살 등을 볼 수 있다. 여성의 몸으로 성불할 수 없다는 교리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여성들은 왜 불교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그들이 얻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공적인 ‘역사’의 기록에서 흔적도 찾기 어려운 여성의 삶과 목소리는 봉헌한 저고리 안에 쓴 발원문, 사경의 말미에 적은 기록, 불화의 화기에 빼곡히 적힌 시자주의 명단 속에서 발견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서경 (書經)』의 구절을 인용한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섹션 ‘암탉이 울 때: 유교사회의 불교 여성’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제약이 만연해 있던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던 흔치 않은 예를 보여준다. 조선 왕실의 사찰인 회암사의 최대 후원자였던 문정왕후는 1565년, 아들 명종의 만수무강과 왕비의 임신, 왕손 탄생을 기원하며 석가모니불, 약사불, 미륵불, 아미타불을 그린 불화 400점을 조성했다.

이번 전시에는 당시 제작된 작품 중 현존하는 <석가여래삼존도>(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약사여래삼존도>(국립중앙박물관) 2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독보적인 불교미술의 후원자였던 왕실 여성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2부 전시의 마지막은 자수로 새겨진 아미타여래, 관음보살도 족자, 번(幡)의 형태의 자수품, 자수로 꾸며진 사경 표지, 화려한 자수 가사,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 내부에서 발견된 저고리와 발원문, 인쇄본 다리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자수와 바느질은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습득해야만 하는 필수적 덕목으로, 자수로 제작된 불교 미술품은 창작자로서의 여성의 행위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으로 자수를 한 수불(繡佛)은 자신의 몸을 받쳐 무량의 공덕을 쌓을 수 있는 궁극의 공양이자, 육체를 매개로 한 부처와 공양자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상징한다. 부정의 근원으로 여겨졌던 여성 신체의 일부가 부처의 형상으로 구현되는 모순적인 현상이 흥미롭기만 하다.



<석가탄생도> 조선, 15세기 족자 비단에 채색, 금니 화면: 
145×109.5cm 전체: 242.3×133.4cm 혼가쿠지 
사진: Ochiai Haruhiko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은 여러가지 면에서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전시다. 해외에 뿔뿔이 흩어져 함께 보기 어려웠던 고려와 조선의 불화들, 특히 서사적 성격이 강한 정교한 필치의 조선 전기 불화인 <석가탄생도>와 <석가출가도>,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제작된 <석가여래삼존도>와 <약사여래삼존도>를 나란히 두고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또한 동아시아 맥락에서 한국 불화의 위치와 맥락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작품들을 직접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함께 전시된 고려의 <아미타여래삼존도>(리움미술관)와 중국 남송의 <아미타여래삼존도>(클리브랜드미술관)와 16세기 일본의 <아미타여래이십오보살내영도>(나라국립박물관)과의 비교를 통해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독특한 양상으로 발전해 온 아미타 신앙의 모습을 살펴 볼 수 있다. 또한 전시 내내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백제 <금동관음보살입상>은 독립된 작은 공간에서 오롯이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부드러운 미소,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옷주름과 섬세한 구슬 장식, 날렵한 허리와 살짝 비튼 우아한 자세는 백제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리움 미술관이 소장한 <감지금니 묘법연화경>은 화려하고 정교함의 극치인 고려 사경화로, 이번 전시에서는 전체 7권 완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특히 7권 말미에 진한국대부인 김씨(辰韓國大夫人 金氏)가 충혜왕의 영가천도(靈駕薦度)를 기원하며 남긴 발원문은 당시 여성 후원자가 겪었을 좌절과 한계 그리고 염원을 엿볼 수 있다. 김씨는 이 발원문에서 이전 겁의 불행으로 현세에서는 여자의 몸을 받았다고 한탄하지만, 은글자로 쓴 화엄경 1부와 금글자로 쓴 법화경 1부를 사경하며 쌓은 공덕으로 다음 생에 성불할 수 있는 (남성)의 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소망을 담았다.

다양한 장르의 불교미술 작품을 젠더와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관람자들의 눈을 매혹시키는 이 전시는 분명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것이다. 다만, 그간 학계와 대중들 사이에서 논의되었던 젠더에 대한 다양한 담론과 이를 기반으로 한 문제의식,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젠더에 대한 개념과 작품을 분석하는 이론적 틀로서의 젠더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진전되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역사 속의 억압과 차별받았던 수많은 여성들처럼 우리는 모두 용녀(龍女)를 꿈꾸고 있는지 모른다. 법화경에 나오는 용녀(龍女)는 용왕의 딸로 태어났지만, 남성으로 몸을 바꾸어 부처가 된 인물이다.


 여전히 여성은 성불할 수 없는 존재이고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하기만 하다. 그러나, 여성들은 성불의 염원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그 길은 결코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 전시는 그 가능성을 보며 고군분투했던 역사 속의 작은 거인들의 서사이다. 전시장을 나와 호암미술관의 잘 가꾸어진 희원에 흐드러지게 핀 매화와 벚꽃들을 보며, 이것만으로도 지금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원 연못 관음정의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oniel)의 설치작업인 <황금 연꽃>과 <황금 목걸이>, 미술관 진입로의 루이스 브루주아(Louise Bourgeois)의 거미 모양 조각 작품 <마망(Maman)>도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진흙에서 꽃을 피우는 고귀한 연꽃과 염원이 담긴 구슬 목걸이를 형상화한 장 미셸 오토니엘의 작업과, 뱃속 가득 알을 품은 거미로 모성애를 표현한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품은 이 특별전의 의미와 중첩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 1부 전시 전경 이미지 제공: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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